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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 9일)
젊은 직원들과 대화하다 보니 "저 아파트 사는 사람인데요"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온다. "나 이대 나온 여잔데"라던 영화(타짜·2006) 대사를 패러디한 위트인가 살폈더니 사뭇 진지하다. 더 들어보니 이제는 아파트가 계층을 가리키는 심벌로까지 확대되었나 보다.
1960년대 도시화가 급하게 진행될 때 아파트는 정부와 개인에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인프라가 부족했던 시절 정부로서는 급하게 모아서 짓는 게 우선이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이 이 낯선 주거 형태를 '진짜 집'으로 받아들이긴 힘들었다. 땅이 좁다 보니 강요된 공간으로, 상황이 바뀌면 빠져나오고 싶었던 곳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이 다수였다. 1970년대까지도 압구정 현대 등 여러 아파트 단지가 미분양되곤 했었다.
아파트에 입주했던 주부들이 먼저 고민했던 문제는 장독대를 어디에 둬야 하나였다고 한다. 각 가정에서 매년 김장이 연례행사였던 시절 이 토끼장에는 김장할 곳도, 김장한 김치를 묻어둘 곳도 없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등이 따뜻해야 잠드는 한국인 습성을 무시한 채 침실 벽 앞에 설치된 라디에이터는 당최 온돌을 대신할 수 없었고, 밥상을 들고 안방에 온 식구가 모여서 밥 먹던 시절에 L·D·K(거실·식당·주방)라는 공간 분리는 낯설었다.
시간이 흘러 발코니엔 수도꼭지가 연결되었고, 부엌 옆에는 다용도실이라는 것도 생겼다. 물론 한참 뒤 김치냉장고도 들어왔다. 흉물이었던 라디에이터는 보일러로 대치되었고, 밥상은 살그머니 식탁이 되었다. 가족들은 이제 거실 TV 앞에 모였다. 중국 일본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2층 목조 주택이 왜 유독 조선에는 없었냐는 의문이 많은데, 온돌만큼은 포기하지 못했을 조상들이 2층 집을 선호할 리 없었다. 그랬던 온돌마저 보일러로 대치되었고, 이젠 해외 고급 아파트에 패널히팅이란 이름으로 들어간다. 교자상에서 밥 먹고, 등 지지면서 잠자던 습성이 바뀌는 데 한 세대가 채 안 걸렸다.
아파트는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을까. 편리함과 안전에 답이 있다. 연탄불로 부엌에서 물을 데우던 시절 샤워꼭지만 돌리면 나오는 온수는 주부들 마음을 사로잡았고, '개조심'을 대문 앞에 붙이고 담장 위에 철조망까지 걸치고 살던 때 열쇠 하나로 문을 잠그면 안전이 담보되는 주택을 포기하기는 어려웠다. 거절하기 힘든 신세계였다.
이제는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전국에 60%쯤 된다. 싱가포르를 제외하면 비교할 나라도 없다. 그동안 아파트는 진화해왔는데, 연립이나 다세대 등 다른 주거 유형을 더 잘 짓는 데는 소홀했다는 반성이 든다. 아파트가 사회의 층위를 나누는 또 다른 경계로 서기 전에 서둘러야겠다.
[김세용 서울주택도시공사 사장]
매일경제 2021.02.09
February 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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