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30일)
김세용 고려대 건축학과 교수, 한국도시설계학회 회장
2018년 11월, 국일고시원 화재로 전국이 몇 주동안이나 들썩였다. 준공된지 35년된 낡은 건물에는 스프링클러가 아예 없었다. 스프링클러 의무설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고발생전, 서울시가 스프링클러 설치비용을 지원하는 대신에 몇 년간 임대료를 동결하는 조건을 고시원에 제안했으나 건물주는 거절하였다. 내부 공간을 쪼개서 만든 ‘내창방’, 창문이 없어서 종일 어두운 ‘먹방’과 출입구외에는 비상대피로조차 없었던 고시원의 건물구조는 문제를 더 키웠다. 화재로 3층에 살던 거주자 7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쳤는데, 사상자 대부분은 중장년의 일용직 노동자, 비정규직 혹은 고령의 기초생활 수급자였다. 정부는 여러 대책을 내놓았지만, 개선안이 지지부진하게 논의되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다치고 죽어가고 있었다. 2020년 서울시 소방재난본부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서울 소재 고시원에서 총 144건의 화재가 발생해 8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부상당했다고 발표했다. 국일고시원 화재 이후 4년째 되는 2022년 1월에야 서울시 건축조례가 개정되었는데, ‘고시원을 새로 짓거나 증축하려면, 방 크기를 7㎡ 이상으로 해야 하고, 창문도 반드시 달아야 한다.’는 내창방과 먹방을 금지하는 내용이 주였다.
2019년에 개봉되었던 영화 ‘기생충’은 반지하 거주 가족을 소재로 하였고, 이 영화가 우리 사회에 던졌던 여러 메시지 가운데는 열악한 주거환경에 대한 반성도 있었다. 영화 개봉 이후, 반지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갑자기 커졌고, 이듬해 봄에 발표된 주거복지로드맵 2.0에서는 반지하 거주자를 공공임대주택 이주 지원대상으로 설정하였다. 이후 SH공사에서는 반지하 거주자들을 지상으로 이주시키고, 기존 반지하 공간을 주민편의시설로 전환하는 노력을 개시하였다. 하지만 기생충 개봉 이후 반짝하였던 반지하에 대한 관심은 다시 수그러들었고, 올해 여름 서울에서 반지하 침수사고로 세 분이 아까운 생명을 잃었다. 서울시는 즉각 기존 공공임대주택을 재건축하여 공공주택을 다수 확보한 후, 반지하 거주자를 이주시키겠다고 발표하였고, 중앙정부도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지원 방향을 제시하였다. 서울시는 반지하 주민들을 임대주택에 입주시키고, 2년간 매월 20만원을 지급하겠다고도 했다.
반지하에 대한 서울시나 중앙정부의 즉각적인 대응과 정책 의지는 높이 살만하지만, 현실을 제대로 들여다보면 우려가 커진다. 서울에는 반지하주택이 20여만호가 있다. 경기도 10여만 호까지 합하면 수도권에만 30여만 호가 있는 셈이다. 서울, 경기 두 곳 모두 2010년 이후 반지하주택 총량은 감소하고 있는데, 주된 이유는 주차장법이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옥탑방은 2010년 서울 3만 실, 경기 1만 실에서 지금까지 크게 늘지 않고 있다. 고시원의 경우, 통계 잡기가 꽤나 어려운 데, 서울의 경우 2009년 6000여 동에서 2017년 12000여 동으로 상당히 증가하고 있다. 한 동당 호실 수를 감안하면, 반지하 감소 물량 중 상당수가 고시원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반지하 30만 호를 없애면, 고시원, 옥탑방이 늘어날 것이고, 반지하에 임대주택 입주권을 줄 경우, 반지하 가격만 올라갈 것이다. 서울, 경기에만 대략 50만 이상으로 추정되는 지옥고(반지하,옥탑방,고시원)가 있다. 지옥고는 함께 해결을 모색해야 할 패키지이지, 어느 하나 해결한다고 해서 풀리는 문제가 아니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정치인들이 주도해서 성급하고 포퓰리즘적인 대책으로 다뤄질 문제는 더욱 아니다. 그렇다고 시간을 길게 잡고, 용두사미로 끝낼 건은 더더욱 아니다.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은 지난 1980년대 이후 우리 도시에서 저렴한 소형주택을 쓸어버리자 급속히 나타나게된 주거 유형이다. 도심에 있던 소형주택을 재정비를 통해서 없애고, 번듯한 아파트 위주로 재건축할 때 지옥고는 이미 예견되었다. 교외의 20평 아파트보다는 도심의 5평이 아쉬운 사람들에게 지옥고는 그런대로 이유있는 대안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지옥고 인허가 금지와 같은 정책이 작동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인허가를 통하여 지옥고를 금지하고 공공이 다 해결하겠다는 것은 문제 해결을 더디게 할 뿐이며, 공공이 반지하 30만 호, 혹은 지옥고 50만 호를 다 떠안을 수도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물량을 빠르게 해결하려면 민간의 힘을 빌려야 함은 이제 상식이다. 예를 들어, 반지하를 타용도로 전환하고, 반지하 거주민의 동일건물 거주를 약속하는 건물주에게는 한시적으로 증축을 허용해주는 것도 방법이다. 할 수 있는 것을 살펴보고, 작동 가능한 것부터 손을 대야 문제가 풀린다. 시작은 거대하고 끝은 미약한 포퓰리즘적인 대책들, 이제는 반복하지 않을 때도 되었다.
e-대한경제 2022년 9월 30일
*관련링크: https://www.dnews.co.kr/uhtml/view.jsp?idxno=202209281703476390358
(2022년 9월 30일)
김세용 고려대 건축학과 교수, 한국도시설계학회 회장
2018년 11월, 국일고시원 화재로 전국이 몇 주동안이나 들썩였다. 준공된지 35년된 낡은 건물에는 스프링클러가 아예 없었다. 스프링클러 의무설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고발생전, 서울시가 스프링클러 설치비용을 지원하는 대신에 몇 년간 임대료를 동결하는 조건을 고시원에 제안했으나 건물주는 거절하였다. 내부 공간을 쪼개서 만든 ‘내창방’, 창문이 없어서 종일 어두운 ‘먹방’과 출입구외에는 비상대피로조차 없었던 고시원의 건물구조는 문제를 더 키웠다. 화재로 3층에 살던 거주자 7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쳤는데, 사상자 대부분은 중장년의 일용직 노동자, 비정규직 혹은 고령의 기초생활 수급자였다. 정부는 여러 대책을 내놓았지만, 개선안이 지지부진하게 논의되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다치고 죽어가고 있었다. 2020년 서울시 소방재난본부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서울 소재 고시원에서 총 144건의 화재가 발생해 8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부상당했다고 발표했다. 국일고시원 화재 이후 4년째 되는 2022년 1월에야 서울시 건축조례가 개정되었는데, ‘고시원을 새로 짓거나 증축하려면, 방 크기를 7㎡ 이상으로 해야 하고, 창문도 반드시 달아야 한다.’는 내창방과 먹방을 금지하는 내용이 주였다.
2019년에 개봉되었던 영화 ‘기생충’은 반지하 거주 가족을 소재로 하였고, 이 영화가 우리 사회에 던졌던 여러 메시지 가운데는 열악한 주거환경에 대한 반성도 있었다. 영화 개봉 이후, 반지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갑자기 커졌고, 이듬해 봄에 발표된 주거복지로드맵 2.0에서는 반지하 거주자를 공공임대주택 이주 지원대상으로 설정하였다. 이후 SH공사에서는 반지하 거주자들을 지상으로 이주시키고, 기존 반지하 공간을 주민편의시설로 전환하는 노력을 개시하였다. 하지만 기생충 개봉 이후 반짝하였던 반지하에 대한 관심은 다시 수그러들었고, 올해 여름 서울에서 반지하 침수사고로 세 분이 아까운 생명을 잃었다. 서울시는 즉각 기존 공공임대주택을 재건축하여 공공주택을 다수 확보한 후, 반지하 거주자를 이주시키겠다고 발표하였고, 중앙정부도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지원 방향을 제시하였다. 서울시는 반지하 주민들을 임대주택에 입주시키고, 2년간 매월 20만원을 지급하겠다고도 했다.
반지하에 대한 서울시나 중앙정부의 즉각적인 대응과 정책 의지는 높이 살만하지만, 현실을 제대로 들여다보면 우려가 커진다. 서울에는 반지하주택이 20여만호가 있다. 경기도 10여만 호까지 합하면 수도권에만 30여만 호가 있는 셈이다. 서울, 경기 두 곳 모두 2010년 이후 반지하주택 총량은 감소하고 있는데, 주된 이유는 주차장법이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옥탑방은 2010년 서울 3만 실, 경기 1만 실에서 지금까지 크게 늘지 않고 있다. 고시원의 경우, 통계 잡기가 꽤나 어려운 데, 서울의 경우 2009년 6000여 동에서 2017년 12000여 동으로 상당히 증가하고 있다. 한 동당 호실 수를 감안하면, 반지하 감소 물량 중 상당수가 고시원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반지하 30만 호를 없애면, 고시원, 옥탑방이 늘어날 것이고, 반지하에 임대주택 입주권을 줄 경우, 반지하 가격만 올라갈 것이다. 서울, 경기에만 대략 50만 이상으로 추정되는 지옥고(반지하,옥탑방,고시원)가 있다. 지옥고는 함께 해결을 모색해야 할 패키지이지, 어느 하나 해결한다고 해서 풀리는 문제가 아니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정치인들이 주도해서 성급하고 포퓰리즘적인 대책으로 다뤄질 문제는 더욱 아니다. 그렇다고 시간을 길게 잡고, 용두사미로 끝낼 건은 더더욱 아니다.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은 지난 1980년대 이후 우리 도시에서 저렴한 소형주택을 쓸어버리자 급속히 나타나게된 주거 유형이다. 도심에 있던 소형주택을 재정비를 통해서 없애고, 번듯한 아파트 위주로 재건축할 때 지옥고는 이미 예견되었다. 교외의 20평 아파트보다는 도심의 5평이 아쉬운 사람들에게 지옥고는 그런대로 이유있는 대안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지옥고 인허가 금지와 같은 정책이 작동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인허가를 통하여 지옥고를 금지하고 공공이 다 해결하겠다는 것은 문제 해결을 더디게 할 뿐이며, 공공이 반지하 30만 호, 혹은 지옥고 50만 호를 다 떠안을 수도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물량을 빠르게 해결하려면 민간의 힘을 빌려야 함은 이제 상식이다. 예를 들어, 반지하를 타용도로 전환하고, 반지하 거주민의 동일건물 거주를 약속하는 건물주에게는 한시적으로 증축을 허용해주는 것도 방법이다. 할 수 있는 것을 살펴보고, 작동 가능한 것부터 손을 대야 문제가 풀린다. 시작은 거대하고 끝은 미약한 포퓰리즘적인 대책들, 이제는 반복하지 않을 때도 되었다.
e-대한경제 2022년 9월 30일
*관련링크: https://www.dnews.co.kr/uhtml/view.jsp?idxno=2022092817034763903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