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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기고문] 시스템 부재가 아닌 리더쉽 실종 / 대한경제

연구조교
2022-11-10
조회수 532

(2022년 11월 10일)


김세용 고려대 건축학과 교수, 한국도시설계학회 회장


색다른 할로윈데이를 경험했던 것은 수십년 전 유학시절 뉴욕에서였다. 인구가 밀집한 곳이다보니 호박인형 장식 뒤에서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주는 것보다는 사람들의 퍼레이드가 인상적이었다. 각양각색의 할로윈 의상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차이나타운이 있는 커넬스트릿에서맨해튼남단 일대를 행진하는 것은 그 자체가 커다란 볼거리였다. 물론 유니폼입은 경찰들이 곳곳에 배치되었고, 인파 밀집지역은 지하철이 그냥 통과해버렸다. 행진 인파들은 자원봉사자 도움 아래 일정한 간격을 두고서 기괴한 차림을 뽐내며 거리를 휩쓸고 다녔다. 코로나 이전에 구경했던 이태원 할로윈 축제도 뉴욕의 그것과 유사한 광경이었다. 뉴욕 퍼레이드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젊은이들이 다양한 차림을 한 채로 거리를 쏘다니는 것을 보면서 오래전 추억을 떠올리곤 했다.


그랬던 축제가 갑자기 참사로 변했고, 급기야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11월 4일자 기사에서 27년 전 발생했던 삼풍백화점 사고를 소환했다. 기자는 전형적인 후진국형 인재를 겪었던 한국이 지난 세월 동안 얻은 교훈은 무엇인가를 물었다. 삼풍백화점 사고와 이번 참사의 유사점도 차례로 지적하였다. 위험에 대한 예고가 이미 수차례 있었으나 이를 무시했고, 책임져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무책임한 대응도 과거와 달라진 게 없다는 지적은 뼈아프다. 근 30년 동안 우리는 달라진 게 없었을까? 삼풍, 성수대교, 대구지하철, 가깝게는 세월호를 겪으면서 우리는 숱하게 반성했고, 안전에 대한 법과 제도, 그리고 매뉴얼을 만들었고, 시스템을 정비해왔다. 그런데 또 이런 일이 터지고 말았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정부 측의 반응은 몇 가지로 정리된다. 고위관계자들은 안전시스템 부재를 탓했고, 사고 후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크라우드 매니지먼트(crowd management; 군중 관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초기에는 경찰력을 더 투입했더라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라는 발언도 나왔다. 한편, 정부는 각 개인에게는 책임을 묻고 있다. 외국에서 들어온 종교적 행사가 이태원 상권과 결합하여 변질되었다는 비판에서 시작해서, 불법 증축건축물 소유주, 좁은 골목에서 사람들을 밀쳤다는 혐의를 받는 개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수사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할로윈은 행사가 아닌 현상이라고 했던 것은 주최 측이 없으므로 지자체에는 책임이 없다는 강조로 보이지만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을 간과한 발언이었다. 동법 2조와 3조에는 재난에 대한 국가 및 지자체의 책무가 정의되어있고, 25조에는 각종 행사 안전에 대한 구체적인 지자체의 의무조항이 명기되어 있다.


주최 측이 있는 행사만 경찰과 지자체가 관리해야 한다면, 며칠 남지않은 수능 날 강남역이나 크리스마스 시즌 명동길에 가려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할까? 할로윈데이 이태원은 올해만 붐볐던 게 아니다. 외래문화의 변종이건 상술이건간에 코로나 이전부터 젊은이들의 호기심 속에 매년 진행되어왔던 축제였다. 10월 중간고사를 막 끝낸 대학생들이 약간의 일탈을 경험하기에 시기적으로도 들어맞았다. 지난 몇 년간은 매년 수만명 씩 모여들었고, 실외에서 마스크를 벗게 된 올해는 더 많은 젊은이들이 올 게 자명하였다. 행사전 경찰, 소방, 지자체가 모여서 대책을 논의하고, 골목길 일방통행이나 지하철역 패스 등 교통통제를 하였고, 이태원길 곳곳에 정복 경찰이 배치되곤 하였다. 그래도 사소한 사고는 항상 일어나곤 하였다. 할로윈 이태원뿐만 아니라, 광화문 광장, 시청앞 광장, 한강 고수부지, 명동길, 강남역등에서 치러진 행사는 다 그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노력 속에 진행되었고, 경찰과 소방관, 공무원들의 헌신속에서 시민들이 즐기는 시간이었다.


지난 몇 년간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벌어졌던 축제가 왜 올해는 참사가 되었을까? 그동안 해오던 루틴은 왜 갑자기 없어졌을까? 언론 보도에 따르면 사전 대책회의는 부실했고, 교통통제는 없었으며 질서유지를 위한 경찰력 투입 대신 마약사범 검거에 집중했다고 한다. 왜 이번에 이렇게 되었는지는 상세하게 조사해봐야겠지만, 시스템이 없으니 새로 구축해야 한다거나 앞으로는 각자도생 해야한다는 자조섞인 판단은 미루는 게 낫다. 멀쩡한 조직을 분풀이하듯 해체했다가 시간 지나면 슬그머니 원위치시키거나, 하위직 꼬리 자르기로 적당히 면피하려는 시도도 애초에 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진짜 지난 30여 년을 허송세월 한것이 된다. 시민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서 투입되었던 경찰들, 날밤을 새워가면 대책을 논의하던 수많은 공무원들이 그대로 있다. 이번 참사는 시스템의 부재가 아닌 리더쉽의 실종에 기인한 것이다. 우리에게는 아직 12척 이상의 든든한 배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관련링크 : https://www.dnews.co.kr/uhtml/view.jsp?idxno=2022110816591693406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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